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 (문단 편집) == [[홀로코스트]] == 벨라루스에서 발생한 사망자 2~3명 중 1명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벨라루스 인구의 11명 중 1명을 차지했음을 감안하면 벨라루스의 모든 종족집단 중 가장 집중적이고 의도적인 학살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 학살은 슬라브인 노예화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 왜냐하면 현지 엘리트의 상당수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1941년 7월 3일 [[민스크]]에서 유대인 지식인 2천여 명이 숲에 끌려가 학살되어 벨라루스 최초의 유대인 살육이 이루어졌다. 1941년 7월 15일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을 볼 수 있게 패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동월 20일에는 [[민스크]] [[게토]]가 세워져 10만 가량의 유대인들이 수용되었다. [[민스크]] 게토는 소련 점령지에 세워진 유대인 게토 중 가장 거대한 수용인원을 자랑했다. 벨라루스의 다른 도시들도 상당수의 유대인을 수용했는데, 보브루이스크 게토는 2만 5천, [[비쳅스크]] 게토는 2만, [[마힐료우|모길레프]] 게토는 1만 2천, [[호멜|고멜]] 게토는 1만 이상, 슬루츠크 게토는 1만, 보리소프와 [[폴라츠크|폴로츠크]] 게토는 각각 8천을 수용했다. 이외에도 다른 중소도시와 마을에도 게토가 세워졌다. 고멜 주(Gomel Oblast)만 해도 20개 게토에 최소 2만 1천이 수용되었다. 오늘날 벨라루스 남부는 7월 17일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에 병합되었고 이 지역도 유대인들은 다른 주민들과 분리되어 임시 게토에 수용되었다. 게토에 갇힌 수많은 유대인들이 극심한 인구 과밀과 그로 인한 영양실조, 위생 악화에 시달려 아사하거나 병사했다. 그러나 독일은 유대인들이 "자연적으로" 죽어가는 속도에 불만족했다. 11월 독일은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에서 끌고 온 유대인 2만 5천을 수용하기 위해 민스크 게토에서 유대인 1만 2천을 끌어냈다. 그들 중 6,624명은 11월 7일에, 5,500명은 동월 20일에 인근 투친카 숲에 끌려가 [[아인자츠그루펜]]에게 총살되었다. 이듬해 1942년 3월 민스크 게토에서 유대인 5천명이 더 학살되었다. 동년 8월까지 민스크 게토에 남은 생존자는 9천도 되지 않았다. 1943년 10월 독일 당국은 민스크 게토를 청산하고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소비보르 절멸수용소]]로 이송하여 학살했다. 다른 수천여 명은 민스크에서 동쪽으로 수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말리 트로스테네츠 절멸수용소에서 학살되었다. 독일 당국은 유대인을 게토에 수용할 뿐만 아니라 각 도시와 마을을 수색하여 유대인들을 적극적으로 살육했다. 최초의 학살 작전은 독일의 질서경찰[* 약칭 오르포(Orpo).]과 [[아인자츠그루펜]]이 수행했다. 7월 8일 RSHA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점령지 내 15세 이상 45세 이하 유대인 남성을 눈에 띄는 대로 모두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8월까지 독일의 학살부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유대인을 죽였다. 이 총알에 의한 홀로코스트(Holocaust by bullets)로 오늘날 벨라루스 영역에 거주하던 최소 80만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아인자츠그루펜, 보안국[* Sicherheitsdienst des Reichsführers-SS. 약칭 에스데(SD).], 질서경찰, 벨라루스인 보조경찰[* 백루테니아인 보조경찰(Weißruthenische Hilfspolizei)]에 학살되었다.[* 단 백러시아인 보조경찰 중 벨라루스인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그들 대부분은 인근의 리투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라트비아인 부역자로 구성되었다.] 1944년 7월 3일 소련군이 민스크를 탈환했을 때 남아 있던 유대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독일군은 벨라루스에서 패퇴하기 전에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지우려고 발악했다. 예를 들어 말리 트로스테네츠 절멸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샤시코브카에 설치된 소각로에서 불태워져 블라고브치나에 묻혔다. 말리 트로스테네츠는 [[바비야르 학살]]을 감춘 1005호 특임대[* 명칭은 무슨 특수부대 같지만 실상은 홀로코스트를 포함해 동유럽 점령지에서 자행한 모든 대랑학살의 증거를 제거하는 작전인 '''1005호 특수행동'''(Sonderaktion 1005)에 투입된 모든 부대에 일괄 부여된 부대명이다.]에 의해 흔적이 지워졌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학살이 드러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조사단은 블라고브치나에서 50미터 길이의 매장지 34군데를 찾아냈는데, 3미터 깊이에서 '''뼈가 타고 남은 재로 된 50cm~1m 가량의 지층'''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15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묻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